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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에 대한 생각들] 사유하고 질문하며 살아야 한다
    낙서장 2022. 11. 12. 12:22

    어떤 사람들은 고유함과 자신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생각의 결과물을 가져다 쓰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남이 생각해 놓은 결과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숙고한 생각으로서의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철학자의 이론들을 열심히 익힌다고, 자신의 철학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한 갈망이며, 호기심의 추구이다. 생각은 인간만이 할 수 있기에, 인간 그 자체를 규정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인간은 왜 생각으로 규정되는가? 사회 과목에서 배웠듯이, 우리는 인간 의지의 반영 여부에 따라 환경을 인문과 자연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세계는 자연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현상세계 위에, 인간이 부여한 규준에 따라서 운영되는 추상세계가 존재하는 구조이다. 흔히 추상세계의 구성을 문명(文明)이라고 부른다. 잠시 주역을 인용하면, 문명은 인간 내면의 강건한 덕성 혹은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강과 유가 서로 교착하는 것은 천문이고, 문명에 머무름은 인문이니, 천문을 관찰하여 사계절의 변화를 살피며,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이룬다.[각주:2]

    즉 인간은 야만성을 극복하여, 자연 위에 무엇인가 창조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활동을 문화(文化)라고 한다. 즉 인간답게(文) 되는(化) 활동이 문화이며, 인간은 문화적 존재(Homo Culturalis)라 불리는 것이다. 창조로 야기한 변화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창의적이다. 결국 문화란 이전의 세계를 깨부수고 피안에서 영토를 넓혀 나가는 모습이며, 우리는 미해석된 세계를 꿈꾸는 존재다. 호기심 없이 지평선을 넘을 수 있겠는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갈망하고,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세계로 넘어가려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생각은, 사유는 인간성의 증거이자 자아 그 자체이다.

    기하학을 흔히 사유의 학문이라 부른다. 기하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현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관념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기하학은 사유적 학문이다. 눈으로 봄으로써 '사과는 빨갛다'는 명제를 만드는 현상과학과 다르게, 기하학은 상상과 논리를 동원하여 명제를 증명해 나간다. 감각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상세계와 다르게, 추상세계는 오직 사유로만 드나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유야말로 추상세계에 접촉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그러나 사유와 감각은 서로 뗄 수 없는 존재다. 일상에서 사유는 어떻게 동작하는가? 강의를 듣고, 칠판을 보면서 정보를 감각한다. 감각한 정보를 시공간적으로 종합하여 말과 그림을 연결한다. 이로부터 개념을 추출하여, 범주적으로 결합한다. 사유는 해석과 설명을 통해 보이지 않던 지식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동작하지만, 기저에서 바탕이 되는 직관이 없으면 개념은 만들 수 없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각주:3]

    그러나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단순히 수학 강의에서 받아들인 내용만을 뱉어내는 사람은, 처음 그 개념을 만들어낸 수학자는 물론이고 교수보다 못한 상태에서 수렴할 뿐이다. 다양한 강의에서 이론을 배우더라도 그곳에 단일한 자기는 없다. 단지 파편화된 지식과 이론의 전달자로서 분열되어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유해야 한다. 호기심을 추구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자기로 존재하며, 그렇기에 사유는 자아 그 자체이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각주:4]

    알에 갖혀 있을 때, 세계는 알을 기준으로 안과 밖으로, 선과 악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알을 벗어나면 안과 밖이 따로 없어진다. 이제 선과 악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원론적 사고가 아닌 일원론적 사고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호기심의 충동으로 질문하며, 의심하며 껍질을 벗어야 한다. 외부에서 온 선악의 기준에 맞춰 행동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규준을 수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유와 행복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1. 김아랑. (2019). 『周易』에서 文의 의미 분석을 통한 인문정신 고찰. 인문학연구, 58, 275-298. [본문으로]
    2. 『周易』, 賁卦, 「彖傳」 : 彖曰 : 賁, 亨, 柔來而文剛, 故亨, 分剛上而文柔, 故小利有攸 往, (剛柔交錯) 天文也. 文明以止, 人文也.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 天下. [본문으로]
    3.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Immanuel Kant: AA III, 75– B 75 [본문으로]
    4. Hermann Hesse: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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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72 / 조화급수처럼 한 걸음씩 꾸준히